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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자기효능감

나는 잘하고 있는 부모인가

확신과 유연함 사이에서

자신감 있는 리더는 따르는 사람에게 안정을 줍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처음 겪는 일 투성이라 자칫 부모는 자신감을 잃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효능감을 회복하고, 부모가 확실한 인생관과 기준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 곧기만 하다면 아이를 숨 막히게 할 수 있어서,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기준이 흔들리면 아이가 눈치를 봅니다

부모의 자기효능감이 낮을 때 아이가 겪는 일은 생각보다 구체적입니다.

같은 행동에 대한 반응이 날마다 다릅니다. 어제는 넘어간 일로 오늘은 혼이 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제는 여유가 있었고 오늘은 지쳤을 뿐이지만, 아이가 배우는 것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오늘 엄마 아빠의 기분이 어떤가"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규칙 대신 표정을 읽는 법을 익힙니다.

더 큰 손실은 안전기지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밖에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돌아와 기댈 수 있으려면, 그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매번 흔들리면 아이는 자기 문제를 들고 오는 대신 혼자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독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포기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흔들릴까

부모가 유독 약해서가 아닙니다. 육아라는 일의 구조 자체가 확신을 깎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은 결과가 비교적 빨리 옵니다. 잘못 만들면 안 돌아가고, 잘 만들면 돌아갑니다. 그 피드백으로 우리는 실력을 쌓습니다. 그런데 육아는 오늘 잘했는지를 십 년 뒤에야 알려줍니다. 오늘의 선택이 옳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태로 매일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피드백이 없으니 판단의 근거를 밖에서 찾게 됩니다. 육아서, 주변 부모, 인터넷 커뮤니티. 그런데 그것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합니다. 참고할수록 기준이 늘어나고, 기준이 늘어날수록 확신은 줄어듭니다. 열심히 공부한 부모가 오히려 더 흔들리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너무 단단하기만 하면

그렇다고 확신이 높을수록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자기효능감이 아주 높은 쪽에는 다른 함정이 있습니다.

확신이 유연함을 밀어냅니다. "내 방식이 맞다"가 조금씩 "그러니 아이가 틀렸다"로 번집니다. 이 전환은 본인에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27유형 중 엄격한 훈련사가 놓이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기준이 분명해서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는 만큼, 그 기준이 아이에게 맞지 않을 때 조정될 여지도 적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 달라집니다. 세 살에 맞던 기준이 아홉 살에도 맞을 리 없습니다. 확신은 기준을 지키는 힘이지만, 기준을 갱신하는 데는 다른 힘이 필요합니다.

확신을 되찾는 세 가지

흔들리는 쪽이든 굳어 있는 쪽이든, 결국 같은 자리로 모입니다. 적은 수의 기준을 확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첫째, 기준을 줄이되 지킵니다. 열 개의 흔들리는 원칙보다 세 개의 지켜지는 원칙이 아이에게 훨씬 안정적입니다. 지금 우리 집의 원칙을 세 개만 적어보세요. 세 개를 못 고른다면 아이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배우자와 기준을 맞춥니다. 부모 둘의 기준이 다르면 아이는 둘 중 유리한 쪽으로 갑니다. 그러면 두 사람 모두의 기준이 무력해집니다. 다르다는 걸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라, 부모 유형 검사에 배우자 궁합을 넣었습니다.

셋째, 결과가 아니라 오늘 내가 한 행동으로 평가합니다. 아이의 성적이나 태도로 나를 채점하면 십 년 뒤에나 답이 나오는 시험을 매일 치르는 셈입니다. 대신 오늘 아이 말을 끝까지 들었는가, 화내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는가로 봅니다. 이건 오늘 안에 답이 나옵니다. 자기효능감은 이렇게 짧은 피드백을 스스로 만들어줄 때 회복됩니다.

강의실에서는 확신이 있는데

직장인 성인 학습의 교육의 장에선 모든 게 확실합니다. 법 규정, 이론, 실습 등 명쾌하고 내가 가르치는 내용에 있어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의 교육에는 자신감이 없습니다.

수학을 곧잘하는 아들에게 선행을 위한 다음 문제집을 사줘야 하는 건지, 앞선 교육이 옳은 건지, 공부에 싫증나지 않게 더 시키지 않고 칭찬하고 쉬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은 점점 부모의 양육태도에 있어 자신감을 잃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옆집이 이렇게 했다더라, 티비에서 보니 이렇게 해야 한다더라, 이런 이야기에 자주 휩쓸리고, 아이에겐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를 오래 생각했습니다. 실력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강의실에는 정답이 있고 집에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법 규정은 찾아보면 나옵니다. 선행을 시켜야 하는지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온다고 주장하는 글은 많지만 서로 반대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강의실에서는 오늘 잘 가르쳤는지 그날 저녁에 알 수 있습니다. 아이 교육은 십 년 뒤에 알려줍니다. 확신은 실력에서 오는 게 아니라 피드백에서 옵니다. 피드백이 없는 일에서 확신이 안 서는 건 부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일이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걸 인정하고 나니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맞게 하고 있나"를 묻는 대신 "내가 어제와 같은 기준으로 하고 있나"를 묻게 됐습니다. 앞엣것은 답이 없지만 뒤엣것은 오늘 안에 답이 나옵니다. 옆집 이야기에 휩쓸리는 것도 여기서 줄었습니다. 옆집 방식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우리 집 기준과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으니까요.

답이 없다는 걸 견디는 일

어떤 태도, 어떤 교육이 맞는지는 끝내 답이 없습니다. 교육하는 사람이 다르고, 교육받는 아이들의 성향이 제각각이고, 그 아이가 매일 달라지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모에게 필요한 확신은 "내 방식이 정답이다"가 아닙니다. "정답이 없는 채로도 나는 오늘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앞엣것은 아이가 자라면 무너지지만 뒤엣것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입니다. 값진 만큼 오래 걸리고, 오래 걸리는 일에는 원래 중간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내 확신은 어느 정도일까

자기효능감은 세 축 중 하나입니다. 인지력·관여도와 함께 봐야 내가 흔들리는 쪽인지 굳어 있는 쪽인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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